[앤디워홀 라이브, DDP] 날 것, 라벨 그리고 비틀어진 라벨

우리는 파악할 수 없는 것들과 긴장관계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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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상태의 날 것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 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있을 뿐, 우리에게 어떤 기능이나 의미를 던저주지 않는다.

자연과 함께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들에겐, 자연이라는 것이 수확해야 하는 어떤 것을 쥐고 있는 것으로 쉽사리 파악될 수도 있지만

자연을 철저히 일정의 구획 안에 가두어놓고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은, 그것이 우리게에 무엇을 던져줄 지 몰라 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게 되지 않을까.

위 사진에서 아스팔트 길과 숲길이 있다. 여기서 쉽사리 저 숲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단순히 길이 편하고, 불편하기 보다는 저 숲 안에서 파악될 수 없는 어떤 것이 나타날 지, 위험한 것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은, 한가지 기능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어 둔 저 아스팔트길에 더 긴장하지 아니하고, 묘한 편안함을 느낀다.

아스팔트이든, 슈퍼마켓에 진열된 상품이든,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섹시한 여배우든 우리는 자연 상태 그대로와 대비하는 묘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그것들은 우리들에게 이미 뻔한 것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스팔트 길은 내가 편하게 걷기 위해 내 발 아래 있어야 하는 것이며

수퍼마켓에 파는 토마토 스프 통조림은 내가 기대했던 토마토 스프 맛과 배고품을 채워줄 뿐이며

텔레비전 속 그 섹시 여배우는, 언제나 남성의 사랑을 갈구하는 섹시 심벌로 존재한다.

그들은 마치 태어날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 눈 앞에 뻔하게 존재하기에, 그 요구만 충족시키면 뻔한 대상과 우리의 관계는 종결되는 것.

 

파악할 수 있게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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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파악될 수 없는 나무통

에 우리에게 친숙한 상표를 달았다.

파악될 수 없던 나무통은 한 수간에 우리가 뻔히 여겼던 것들의 의미를 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린 이게 정말 세제박스이며 토마토 캐첩 박스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다.

아주 멀리서 보면 분간하기 어렵겠지만, 어쨌든 이것들은 미술관 위에 배치되어 있고, 질감의 차이가 뻔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위장에서 오는 약간의 비틀어짐 때문에 뻔히 보였던 것들에게 강렬한 색이 보이기 시작하고, 표면 위의 여러가지 도형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파악될 수 없어서 긴장관계를 만들어주었던 것이, 라벨이 붙여져 이전의 긴장관계는 사라지지만

내가 뻔하게 알고 있던 게 아니게 되었다.

라벨 속 색과 형태과 두둥실 떠다니면서 새로운 물음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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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뻔히 알고 있는 섹시 심벌 마를린 먼로.

그녀는 매체속에서 이미 자연인이 아닌 섹시라는 라벨을 달고 있다.

분절없는 신체의 몸뚱이 어디에 달려있는 지 모르겠지만 “섹시” 라는 라벨이 새로운 경계를 만들어서

대중이 그녀라는 자연인과 만나기 어렵게 두터운 레이어를 형성하고 있다.

앤디워홀은 마를린 먼로의 얼굴에 색의 경계를 선명하게 부곽시킨다.

색은 각각이 또 하나의 라벨들로, 그것 자체로 의미를 만들어 내기에 바쁘기도 하고,

신체가 더이상 자연색을 띄지 않기 때문에 그 덩어리 전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이기도 한다.

앤디워홀이 만든 색이라는 라벨들로 인해,

이전의 섹시 라는 라벨이 벗겨졌는가? 아님 더 강화되었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매우 뻔해서 재미없던 섹시 심벌이 새로운 덩어리로 나타내서 끝없는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 얼굴 안에서 섹시를 찾아볼 수 있니? 네가 갖고 있던 라벨은 어떤 것이었니? 다 마음에 드니? 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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