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참관기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15년도 더 된 때에 전주영화제가 처음 시작되었다. 고등학생인 나는 전주에서 무슨 영화제, 지역에서 뭔가라도 해볼라고 아둥바둥 예산만 쓰다가 망하겠군. 이라며 시크한 태도를 취했는데 그 영향 때문만은 아니고 어쨌든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영화지망생 노릇을 하면서도 전주영화제는 한번도 못갔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화인들이 눈도 배도 푸짐하게 호강시키는 영화제라며 좋아들 하고, 전주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에 고향집이 아직 있는지라 남들보다 접근성도 유리한데도 안갔던 것은 지역영화제까지 찾아갈만한 열정이 없어서, 였다. 사실 전주영화제 뿐 아니라 부산, 제천 등등도 찾아갔던 적이 없었다. 영화제라고 하면 뭔가 버라이어티한 축제 한 마당이 벌어질 것 같지만 사실상 어두컴컴한 극장을 왔다리 갔다리 할 뿐인데 왜 거기까지 찾아가나? 뭐 좋은 영화면 어떻게든 나중에 찾아볼 수 있겠지? 게다가 교통비, 숙박비, 밥값까지 부담되니… 하는 못되고 게으른 마음이 있었다.

 

어쨌든 거기까지가 전사이고, 올해 처음으로 전주영화제에 갔다. 전주영화제가 매해 조금씩 이상해지기도 하고, 괜찮아지기도 하고 그렇다던데 난 처음 간 지라 대조군이 없었고 국제영화제의 위상에 걸맞게 영화 프로그램이 방대해서 선택의 폭이 넓은 것에 꽤 놀랐다. 서울에서 하는 미장센, 아시아나, 여성영화제 등은 시간대별로 볼 수 있는 영화가 많아야 둘 중 택 1 정도였는데.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영화들이 전주 밑반찬처럼 풍성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정말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여기 모여 있었다. 영화의 거리에 자리한 CGV, 메가박스, 전주시네마타운 이 세 극장에서 주로 영화를 봤는데 프랜차이즈 극장이 아니라서 호기심을 자아냈던 전주시네마타운의 상영환경이 너무 안좋아 실망스러웠다. 낡은 프로젝터에 깨지는 사운드로 보고 있으려니 먼 길 달려 온 영화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전주영화제 기간 동 총 5편을 예매해 보았는데 그 중 익스팬디드 시네마 단편선이 가장 전주영화제 스럽다라는 생각이 든다. 실험적인 작품들이 모여있었는데 단편 하나는 집 안에 있는 고양이만 계속 찍어두었다. 저것도 디지털 영화의 얻어내기의 일부인가 보다. 라며 자세히 보다보니 이걸 왜 유투브가 아닌 극장에서 봐야하나 라는 생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사막 위에 서 있는 인물들의 정적인 모습을 회화처럼 담은 또 하나의 에세이 영화. 뭔가 감흥이 밀려오고 있었으나 살짝 졸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거칠게 뒤 흔든 또 한편의 영화와 그 이후에는 다양한 의미를 삽입할 수도 있을 것도 같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도 같은 도전적인 생뚱맞은 서사의 극영화가 한편 나오고, 마지막엔 3D 극영화인데 내러티브는 뻔한 영화가 하나 나왔다.

 

각 단편들이 틀어져 나올 때, 난 언제나 뭔가 준비를 하도 보려고 한다. 이번 영화는 의미일까, 감흥일까? 고양이, 사막 풍경, 뒤흔드는 카메라가 나올 때는 의미는 포기하고 내가 느끼는 감흥에 집중해야 할 것만 같았고- 명백한 극영화가 나올 때는 의미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했다. 사실 감흥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완전히 배제될 순 없으며, 의미를 주로 고민한다고 해서 감흥이 덜 한 것은 아닌데도. 내 스스로 그렇게 프레이밍을 하고 노력해야만 보일 것만 같고, 누군가 이 영화 좋았어? 라고 물었을때 그 감상을 언어화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나? 좋았나? 안 좋았나? 라는 대답에 뭔가 느낌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을 여기저기 뒤적거려보아도 뭐 하나 또렷하게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남은 것들은 있다. 고양이를 영화라고 우기는 창작자의 고집, 사막 위의 두 인물이 풍기는 고요, 거칠게 흔들어 버리는 카메라를 우직하게 담고있는 스크린, 생뚱맞게 목 잘려버리는 캐릭터가 유발하는 웃음, 3D 매체를 활용하려는 소품배치. 이것들은 찰라보다 조금만 더 긴 인상들이지만 그렇게 남은 것들이 앞으로 조합되어 내 안의 무언가에 어떤 영향이라도 주지 않을까?

 

영화의 감상을 표현할 때, 재밌었다/재미없었다. 라고만 표현하게 되는데, 한국어 또는 언어 자체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관객이 영화라는 총체를 재밌었다, 재미없었다 라고 응축하는 것 또한 감상의 자유이지만, 어떤 영화에 있어선 다른 목적을 갖고 접근하고 또 다른 것을 얻어낼 수 있지도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영화제의 영화들은 그런 이상한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들었던 생각이 전주영화제를 개최해주는(?) CGV나 메가박스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이른 바 예술이네 뭐니 하는 이상한 영화들을 이렇게 전주영화제 기간 동안 할당해서 틀어주니깐, 평소엔 안 틀어줘도 괜찮지?! 하는 것은 아닐지. 이런 풍성한 영화들을 영화제에서만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가장 열악했던 시설의 극장이 프랜차이즈 극장이 아니었다는 현실 또한 잔인하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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